조선시대 성리학의 양대산맥은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이다. 역사적 배경 등으로 퇴계는 많이 알려 졌지만 남명은 그렇지 못하다.
남명 조식 선생의 본거지인 경남 합천에 있는 유적(遺蹟)인 선생의 생가(生家), 뇌룡정(雷龍亭), 용암서원, 용암서원 묘정비(廟庭碑), 단성현감 사직소 비석, 선생의 흉상, 선생의 외가 인천이씨 용연서원, 선생의 양친(兩親) 묘갈(墓碣) 등을 소개한다
경상대학교 최석기 교수는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면 경남 합천의 브랜드는 남명 조식(曺植)이다” 고 말했다. 남명 조식선생은 1501년 6월 26일 현재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토동(兎洞) 인천(仁川)이씨 외가댁에서 태어났다. 또한 인생의 전성기인 48세부터 61세까지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지역의 교화(敎化)을 위해 열정을 쏟은 곳이 경남 합천이다.
따라서 합천은 남명(南冥) 사상의 본거지이며 의(義)을 숭상하는 정신이 매우 강한 지역이라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대다수가 남명 조식 선생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고 합천삼가장터 3.1만세운동이 증명해 주고 있다.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조선중기의 대학자이며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健中), 호는 남명(南冥) 아버지는 승문원 판교 언형(彦亨).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충순위 국(菊)의 따님이다.
<선생의 생가>
선생은 1501년(연산군 7년) 6월 26일 현재 경남 합천군 삼가면(당시 삼가현) 외토2길 18-4부근 외가에서 태어났다. 생가의 건축년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70년대 새마을 사업시 철거되었으며 생가복원 공사를 진행중에 있다. 공사가 완공되면 안내판도 깨끗하게 단장될 것이다.
<뇌룡정>
선생이 48세때부터 61세 산청으로 가시기 전까지 태어난 마을인 현재 삼가면 외토리 616-4번지에 뇌룡정(雷龍亭)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29호이다.
‘뇌룡’이란 말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연묵이뢰성(淵默而雷聲) 시거이용현(尸居而龍現)’ 즉 깊은 연못처럼 묵묵히 있다가 때가되면 우뢰처럼 소리치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되면 용처럼 나타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마을 이장영(인천이씨. 前 교장) 씨에 따르면 “ 지금의 뇌룡정은 노후되고 제방공사 부지에 편입되어 곧 용암서원 입구 앞 부지로 이전 개축할 계획으로 있다” 며 “ 제방공사는 주변의 자연 경관(나무. 숲 포함)을 고려한 신중한 시공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용암서원(龍巖書院>
용암서원의 전신은 1576년 회현(晦峴) 현재 가회면 장대리에 있었던 회산서원(晦山書院)이라는 기록이 있다. 회산서원은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그후 1601년에 본 서원을 재건하면서 봉산면의 향천서원(香川書院)으로 개칭되었고 4년후인 1605년 8월에 선생의 위판(位板)이 봉안되고 1609년(광해군1년) 용암서원(龍巖書院)으로 사액(賜額)되었다. 용암서원은 대원군의 사원철폐령이 내려진 1871년까지 존재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뇌룡정 옆에 2007년 복원된 것이다.
<용암서원 묘정비>
현 용암서원 뜰에 묘정비(廟庭碑)는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용암서원에 세웠던 비석으로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302호이다.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고 글씨는 당시 삼가현감 오철상이 썻다. 봉산면에 있던것을 2011년에 옮겨 왔다.
<단성현감사직소(丹城縣監辭職疏) 비문>
선생께서 1555년(명종10년) 10월 11일 단성현감에 제수(除授)되었으나 그해 11월 19일 뇌룡정에서 을미사직소(일명 단성소)를 올리면서 임금과 조정의 잘못을 신릴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비석은 현 용암서원 정문 오른편에 2009년 4월 6일 세워졌다.
<조언형 묘와 비석>
선생의 아버지 조언형(1469-1526)의 묘와 비석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410호이며 현 합천군 삼가면 하판리 산 3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문으로 보아 1528년 10월에 조성되었다.
<숙부인 이씨 묘와 비석>
선생의 어머니 인천이씨의 묘와 비석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411호이며 현 합천군 삼가면 하판리 산 3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석은 1548년 2월경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연사(龍淵祠)와 용연서원(龍淵書院)
인천이씨 선조인 고려시대 이온(李榲) 公을 모시는 사당(祠堂)인 용연사와 용연서원, 쌍비각 등은 선생의 외가인 인천이씨의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선생의 詩 소개>
선생의 남긴 수많은 詩가 있지만 합천 함벽루 천정과 합천박물관 역사관 입구에 게시된 詩를 소개합니다. 앞으로 합천군민을 대상으로 남명 선생 詩 낭송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함벽루(涵碧樓)
南冥 조식(曺 植)
상비남곽자(喪非南郭子): 남곽자 같이 무아지경이 이르지 못해도
강수묘무지(江水渺無知): 흐르는 강물 아득하여 끝을 모르겠네
욕학부운사(欲學浮雲事): 뜬구름 같은 삶을 배우고자 하여도
고풍유파지(高風猶破之): 가을바람 불어와서 흩어버리는 구나
題黃江亭舍(황강의 정자에 머물며)
南冥 조 식(曺 植)
노초무명사(路草無名死: 길가의 풀들은 이름없이 죽어가고
산운자의생(山雲姿意生: 산의 구름은 제멋대로 생겨난다
강류무한한(江流無限恨: 강물은 끝없이 恨을 흘러 보내지만
불여석두쟁(不與石頭爭: 돌(石)과는 서로 다투지 않는다
합천군이 남명의 사상을 내세우고 역사성과 정체성을 알리기 위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합천군민과 재외향우들의 적극적인 관심은 물론 용암서원의 대대적인 정화작업과 홍보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합천유림회 회장이자 본 용암서원 원장인 심의조 전 합천군수는 " 용암서원에 합천 선비대학과 남명문화체험관 설치 등 인근 산청군을 능가하는 전략적인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사진 장충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