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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

이 병 생(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기사입력 2017-10-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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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합천에서 3번째로 개최되는  대장경세계문화축전 행사가 오는 10월 20일부터 11월 5일까지 대장경테마파크 일원에서 17일 동안 개최된다. 특히 가을단풍이 한창 곱게 물들 철일 때라 가야산을 비롯하여 해인사 등지에 많은 관광객이 붐빌 것이다.

 

대장경을 제작한지 1000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2011년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을 계기로 2013년과 올해로 세 번째로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중앙정부와 경남도청의 지원없이 합천군과 해인사에서 “소중한 인연 아름다운 동행„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많은 관광객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번 축전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며 우리 합천 해인사를 찾는 관광객이나 군민들이 팔만대장경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까봐 이 글을 쓴다.

 

(1)해인사 팔만대장경판(국보32호)

 

팔만대장경은 처음 인도에서 생겨났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것을 “경„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담은 것은 “률„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해 놓은 것은 “론„이라 해서 경장. 율장. 논장이라 이것을 삼장이라고 했다.

 

이것이 중국으로 들어가서 부처님의 말씀을 조목조목이 묶어서 소장을 만들고 이 소장을 한데 묶어 대장으로 만든 것이 대장경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는 어떻게 하여 대장경이 만들어졌을까? 부처님 열반 후 3개월 후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500명의 비구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부처님이 45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을 아라한 한사람 한사람이 들은대로 설명하면 다른 스님의 동의를 얻어서 만들어 졌는데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如施我問„이라고했다. 7개월 동안 채집을 해서 제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말씀들을 한데 묶게 되었다. 그러면 대장경은 어떻게 해서 기록되었는가?

 

카트라 나무의 잎을 잘라서 기록했다. 철필로 쓰고 경이란 말은 수트라 즉 실이란 말이다. 꽃다발을 다발로 만들듯이 하나하나 소장을 엮어 대장으로 대장을 엮어 대장경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꽃다발처럼 만든 것이다. 대장경이 이 땅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6세기말 수나라 시대의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현종이 송나라로부터 대장경판을 들여와 보고 우리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을 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현화사란 큰절을 짓고 반야경보라는 전담기구를 설치하여 76년에 걸쳐(1011년~1087년까지)570질 5924권이나 만들었는데 이것을 대구 부인사에 봉안하다가 몽고족이 침입하여 1232년에 불태우고 인쇄본 1715판은 일본 동경 남선사에 봉안하고 있다. 이것이 즉 초조대장경이다.

 

참고로 부인사는 서기 644년 선덕여왕이 창건한 절로 39개의 말사와 약2,000여명의 스님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동화사의 말사로 비구니 스님이 거주하고 있다.

 

초조대장경이 불탈 때 속장경도 함께 불타버렸다. 속장경이란 의천스님이 만들었는데 의천스님은 문종의 4째 아들로 태어나(1055년생) 11세에 스님이 되었는데 1085년에 송나라에 들어가 14개월 동안 약3,000권에 달하는 문헌을 수집하여 돌아와 왕명에 의해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고 1092년부터 1100년까지 9년 동안에 1,010부. 4,740여권의 속장경을 만들었다.

 

 경판일부가 송광사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속장경이란~이미 만들어 놓은 경전을 주석서 해설서로 만들어 자기의 의견대로 해서 다시 경판을 만든 것이다. 이때 판화도 함께 만들어 졌는데(11세기경) 약 100장정도가 있다. 고려의 판화기술은 삼국을 통 털어도 이런 것은 없다고 한다. 산과 강이 보이고 그림 속에 사람이 걸어가는 그러한 모습은 금방 산에서 뛰어나와 불경을 해석이라도 할 그러한 모습이라고 한다.

 

초조대장경도 3회에 걸쳐 새겼다고 하는데 첫째는 고려초판본 둘째는 고려문종때 2회 1,000권, 세 번째는 의천스님의 속장경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시 재조 대장경판을 만들게 되는데 고려고종은 오랑캐의 침해에서 시

달리다보니 불심으로 나라를 수호해 보자는 뜻으로 대장경판을 만들 계획으로 고종 23년(1236년) 강화도에 대장도감이란 전문기구를 설치하고 본사는 강화도에, 분사는 진주와 남해에 두고 16년간(1236년1251년 고종23년~고종38년)에 걸쳐 81,350판을 제작하게 되었다.

 

경판의 나무는 백화목(자작나무)이며 주로 섬 지방에 자생한 나무로서 이 나무를 채취하여 바닷물에 3년간 담갔다가 끄집어내어 판자를 켜서 소금물에 삶고 그늘에 말려 대패질을 해서 경문을 붓으로 쓰고(구양순체) 그에 따라 새긴 것이다.

 

경판의 규모는 가로 70㎝ 세로24㎝ 두께2.6㎝ 무게 3~4㎏이며 종류수는 1,514종, 권수는 6,802권 부수는 1,560부 글자 수는 5,200여만자로서 글자가 마치 한사람이 쓴 것처럼 필체가 일정하고 오탈자가 없다. 높이 3,200ⅿ 무게 280톤 길이 150리(60㎞)로 현존하는 목판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제작이후 강화도 선원사에서 봉안하다가 외침이 심하다보니 소실될 우려가 있어 일시 서울 지천사로 옮겼다가 태조7년(1398넌) 낙동강을 이용하여 고령개(경)포를 통해 이운되어 해인사에 봉안 중이다.

 

해인사로 옮긴 이유는 해인사가 명산이라서 신령스럽다고 느꼈고 또 교통이 불편하여 안전지대라고 생각되었으며 심심산골이라 아주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81,258판이 국보 3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팔만대장경은 세계最高(최고), 最古의 목판대장경으로서 규모와 내용형식에서 당대 동아시아 문명의 결정체로 평가되며 고려대장경은 1011년 발원부터 1251년 팔만대장경 완성까지 240여년간 고려인들의 지혜와 역량을 총결집한 문명의 보고이고,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 속장경을 참고하여 오류를 바로 잡아 이후 대장경의 세계 표준이 되었다.(계속)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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