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고려각판(해인사 사간판)
해인사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판 이외에 사간판 寺刊板(또는 私刊板)이라는 또다른 귀중한 경판이 함께 보관되어 있다.
부처에게 가까이 가 있는 사람들은 시주란 말에 익숙하다. 아무리 욕을 모두 내던진 승려라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해야 하며 절 건물도 때때로 수리하고 크기도 넓혀야 한다. 이런 일에 필요한 재물을 바치는 것이 시주이다. 요즘이야 간단히 돈으로 내놓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먹는 양식에서 땔나무까지 주로 현물을 내놓았다.
시주의 한 방법으로 “경판시주„라는 것이 있다.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부처에게 직접 빌면서 마음에 드는 문구가 들어있는 불경을 새겨 경판을 절에 영구 보존하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시주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부자이거나 지방 유지이다. 절로서는 세력을 과시할 수 있고 인쇄하여 다른 가난한 신자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역사를 가진 절에는 개인이 새겼다는 뜻의 사간판 대장경이 있다.
개인이 새긴 경판이 좀 더 발전하여 절이 주체가 되어 필요한 경판을 새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판은 초조대장경이나 팔만대장경처럼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대규모로 이루어진 것과는 다르다.
개인의 시주를 받아 간행하거나 절 자체의 예산으로 적게는 몇 장씩 많게는 수 백장씩 그때그때 필요한 경전을 새겨서 보관하는 경판이다.
이런 경판은 절에서 새겼다는 뜻으로 사간판이라고 한다.
이 두 종류의 경판은 명확히 구분하기도 어렵고 같이 보관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그냥 “사간판”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간행목록이나 경판을 새긴 연대는 물론 시주자의 이름마저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때로는 잡판이란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달고 천시 되었다.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서로 나란히 가로 뻗음을 한 수다라장과 법보전 두 건물이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건물이고 두 건물 사이를 막아 口자 모양을 만든 작은 건물이 해인사 사간판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자리한 위치에 따라 동사간전과 서사간전으로 불리는 두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부터 보관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해인사 고문서인〈해인사 대장경판 개간 인유〉에 의하면 사간판의 연대는 신라 말기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여러 자료로 보아 해인사의 사간판은 대부분 고려중기쯤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시간판 중에서 특히 고려 때 새긴 것이 명확한 경판을 고려각판이라고 부른다.
모두 54종 2,835장에 이르렀는데, 큰스님의 문집 및 불교 경전들이다. 이중 28종 2,725장이 국보 206호 나머지 26종 110장이 보물 7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고려 숙종 3년(1098넌)의 간기(刊記)가 새겨있는 〈화엄경〉을 비롯하여 충정왕 원년(1349년)에 간행된 〈화엄경약신중〉까지 고려시대 목판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화엄경〉과 〈시왕경〉의 변상도 등 한국전통 판화 자료와 원효, 의상, 대각국사의 문집 등 고승들의 저술은 한국불교역사 및 사상의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 문화의 귀중한 자료이다.
사간판은 팔만대장경판과 크기도 다르다. 길이46~64㎝, 두께1.5~2.4㎝정도이며 마구리가 없는 경판도 많고 마구리가 있더라도 매끈하지 못하고 영성하다. 정장이 아니라는 이유도 관리가 소홀하여 갈라지고 휘고 글자가 마모된 경판도 여럿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판 꽂이도 없이 맨 흙바닥에 마구 쌓여 있어서 일부 경판이 썩어 갔으며 광복후에도 사간판의 관리는 여전히 부실했다. 최근에 동.서사간전 건물을 수리하고 경판꽂이를 교체했으며 마구리가 없는 경판은 새로 만들어 넣는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했다.
특히 장마철에 흔히 곰팡이가 피어 문제가 되었던 동사간전은 1998년 11월 막힌 동쪽 벽 일부를 트고 구조를 개선하여 보존환경을 경판에 맞게 바꾸어 주었다.
사간판이 팔만대장경판 못지않은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제야 겨우 팔만대장경판 수준으로 보존되고 있는 셈이다. 어떤 학자가 임의로 선정하여 10매의 사간판 수종을 조사한 결과 5장의 경판은 가야산에서 흔히 자생하는 거제수나무였다고 한다. 표본의 숫자가 너무 적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간판은 해인사 자체에서 만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지표이다.<끝>
글: 이병생(합천문화원향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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