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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선비의 상징 “매화(梅花)”

조매(早梅) 등 5수

기사입력 2021-03-0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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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2일이 음력 설날이다. 코로나19로 가족친지들도 모이지 못한 설 연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월 대보름(226)이 지났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곳곳에 매화가 꽃을 피웠다. 매화는 난(蘭),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일컫는다.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디며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절개(節槪)의 선비를 상징한다. 매화 관련 시를 몇 수 소개한다.

 

 

1. 조매(早梅)/ 제기(齊己. 863~937)

 

萬木凍欲折(만목동욕절) 모든 나무 얼어붙어 꺾어질 듯 한데

孤根暖獨回(고근난독회) 이 나무만 홀로 양기를 되찾은 듯 하네

前村深雪裡(전촌심설리) 앞 마을 깊은 눈() 속에

昨夜一枝開(작야일지개) 어제 밤 한 가지에 꽃이 피었구나

風遞幽香去(풍체유향거) 바람 따라 그윽한 향기 떠다니고

禽窺素豔來(금규소염래) 새들은 희디 흰 아름다움 엿보러 날아오네

明年猶應律(명년유응률) 내년에도 계절에 순응한다면

先發暎春臺(선발영춘대) 먼저 피어 봄 누대를 비추겠지

 

 

이 시는 당나라 말기 승려 제기(齊己. 863~937)가 지은 시이다. "일자지사(一字之師)"의 유래가 담긴 시로 유명하다. 제기가 처음 지을 때는 4구가 昨夜數枝開였다. 제기의 친구이자 시인인 정곡에게 보여 주며 교정을 부탁하자 정곡이 昨夜一枝開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렇게 고치고 친구 정곡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글자 한자를 수정함에 따라 시의 내용과 풍격이 완전히 달라 진다..

 

2. 매화(매화)/왕안석王安石 (1021-1086)

 

 

墻角數枝梅(장각수지매) 담 모퉁이에 피어난 몇 가지 매화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피었네

遙知不是雪(요지부시설) 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알수 있는 것은

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그윽히 풍겨오는 향기 때문이라오

 

왕안석은 중국 송(, 9601279) 때의 문필가이자 정치인으로 자()는 개보(介甫), ()는 반산(半山)이다.1069~1076년에 신법의 개혁 정책을 실시하였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3.雪梅설매/盧梅坡노매파

 

有梅無雪不精神(유매무설부정신) 매화만 있고 눈() 없으면 운치가 없고

有雪無詩俗了人(유설무시속료인) ()있는데 시가 없으면 저속함을 느끼네

日暮詩成天又雪(일모시성천우설) 날 저물고 시 다지으니 눈()까지 내려

與梅并作十分春(여매병작십분춘) 매화와 함께 완전한 봄을 만드네

 

노매파(盧梅坡)는 남송(南宋) 시대 시인인데 매파는 이름이 아니고 자호(自號)이다 생몰 연대는 미상이다.

 

 

4. 옥당억매(玉堂憶梅)/ 이황(李滉)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뜰 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 티끌 같은 속된 세상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玉堂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대하니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슬피울 제 그대 생각 애절하다.

 

 

이 시는 퇴계 선생이 42(중종 37) 때 홍문관(玉堂)에서 고향에 두고온 매화를 생각하며 지은 시다. 퇴계는 평소에도 '함장가정(含章可貞) 염정자수(恬靜自守)' ,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면 곧게 되고 평온과 고요함으로 스스로 자신을 지켜나간다는 정신으로 매화를 사랑했다고 한다.

 

 

5. 상촌(象村) 신흠의 충절시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거문고는 천년이 지나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번을 꺽여도 다시 가지가 돋아난다

 

조선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象村) 신흠의 시다.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4대 문장가로 청렴한 선비로 유명하다. 이 시는 퇴계 이황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을 만큼 조선 후기 선비사회에서 가장 많이 읽혀진 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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