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前 우리나라(조선)는 임금이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독점하던 왕조시대였다. 임금에게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충(忠)’이라고 여기던 시대에 합천 출신의 참선비 남명 조식(1501-1572)은 역성혁명의 당위성과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담은 민암부(民巖賦)라는 글을 목숨을 걸고 지었다. 이 작품은 운문(시)과 산문의 중간쯤에 속하는 문장이다. 모두 61구 421자로 구성돼 있으며 남명집 제1권에 수록돼 있다.
‘민암(民巖)’은 험악한 민심을 뜻한다. 중국의 오래된 문헌인 서경(書經) 소고(召誥)에 나오는 것으로 “백성은 미약한 것이기는 하지만 바위처럼 험하니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30년 넘게 남명을 연구한 경상대학교 이상필 前 교수는 “민암부는 임금이 나라를 잘못 다스리면 백성이 나라를 뒤엎을 수 있다는 경고의 글이다” 며 “처음 민암부의 글을 접하고는 과연 조선시대에 이런 기백을 가진 선비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남명(南冥) 선생은 ‘민암부(民巖賦)’에서 ‘백성은 물과 같다(民猶水也)’ 고 했다. 백성은 임금을 추대하지만 나라를 뒤엎기도 한다고 했다. 백성을 물에 비유하고 임금을 배에 비유, 물이 배를 순항하게 할 수도 있고 엎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 또 임금을 추대하고 갈아 치우는 힘은 백성(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는 3월 9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은 물론 6월 1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합천군수로 출마하는 후보자 등 모든 권력자는 남명의 ‘민암부’를 꼭 정독할 것을 권한다. 민심이 곧 천심이다. 당선되면 여알(女謁) 등으로 정사(政事)를 어지럽게 할 여지가 있는 사람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안된다. 특히 부군수(?)를 10명 넘게 거느리는 부류의 군수는 절대로 뽑아서는 안된다. 민암부 해석 전문은 다음과 같다.
민암부(民巖賦)
유월 즈음(여름철)에는/六月之交(육월지교)
염예퇴(灔澦堆)가 말(馬)처럼 우뚝하여/灔澦如馬(염여여마)
올라갈 수도 없고,/不可上也(불가상야)
내려갈 수도 없다./不可下也(불가하야)
아아!/吁嘻哉(우희재)!
험함이 이보다 더한 곳이 없으리니/險莫過焉(험막과언)
배가 이로써 가기도 하고,/舟以是行(주이시행)
또한 이로써 엎어지기도 한다./亦以是覆(역이시복)
백성이 물과 같다는 것은/民猶水也(민유수야)
예로부터 있어온 말(言)이니/古有說也(고유설야)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民則戴君(민즉대군)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民則覆國(민즉복국)
내 진실로 알거니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물이니,/吾固知可見者水也(오고지가견자수야)
험함이 밖에 나타난 것은 만만하게 보기 어렵지만,/險在外者難狎(험재외자난압)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니,/所不可見者心也(소불가견자심야)
험함이 안에 감추어진 것은 만만하게 보기 쉽다./險在內者易褻(험재내자이설)
걸어 다니기는 평지보다 쉬운 곳이 없지만,/履莫易於平地(이막이어평지)
맨발로 다니면서 살피지 않다가는 발을 다치고,/跣不視而傷足(선부시이상족)
거처함이 이부자리보다 편안한 곳이 없지만,/處莫安於袵席(처막안어임석)
모서리를 조심하지 않다가는 눈을 다친다./尖不畏而觸目(첨불외이촉목)
재앙은 실로 소홀히 하는 데서 생기나고,/禍實由於所忽(화실유어소홀)
험함은 계곡에서만 일으나는 것이 아니다./巖不作於谿谷(암부작어계곡)
원한이 마음 속에 있을 적엔/怨毒在中(원독재중)
한 사람의 생각이라 몹시 미세하다./一念甚銳(일념심예)
필부(匹婦)가 하늘에 호소해도,/匹婦呼天(필부호천)
한 사람일 적엔 매우 보잘 것 없다./一人甚細(일인심세)
그러나 밝은 감응이란 다른 데 있지 않으니,/然昭格之無他(연소격지무타)
하늘의 보고 들으심이 바로 이들에게 있다네./天視聽之在此(천시청지재차)
하늘은 백성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들어주니,/民所欲而必從(민소욕이필종)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것과 같다./寔父母之於子(식부모지어자)
한 사람의 원한과 한 아낙의 하소연이 처음엔 하찮은 것이나,/始雖微於一念一婦(시수미어일념일부)
끝내 거룩하신 상제(上帝)께서 보답하시니,/終責報於皇皇上帝(종책보어황황상제)
그 누가 감히 우리 상제를 대적하랴./其誰敢敵我上帝(기수감적아상제)
실로 하늘이 내린 험함은 건너기가 어렵도다./實天險之難濟(실천험지난제)
하늘이 만고(萬古)에 걸쳐 험함을 보여 주었는데/亘萬古而設險(긍만고이설험)
얼마나 많은 제왕들이 이를 예사로 보았던가?/幾帝王之泄泄(기제왕지설설)
걸(桀)‧주(紂)가 탕(湯)‧무(武)에게 망한 것이 아니라./桀紂非亡於湯武(걸주비망어탕무)
바로 백성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乃不得於丘民(내부득어구민)
한(漢)의 유방(劉邦)은 보잘 것 없는 백성이었고,/漢劉季爲小民(한유계위소민)
진(秦)의 호해(胡亥)는 대단한 임금이었는데,/秦二世爲大君(진이세위대군)
필부(匹夫)로서 천자(天子)의 자리를 차지했으니,/以匹夫而易萬乘(이필부이역만승)
이처럼 큰 권한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是大權之何在(시대권지하재)
다만 우리 백성의 손에 달려 있으니,/只在乎吾民之手兮(지재호오민지수혜)
가히 겁내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이 몹시 겁낼만 하도다./不可畏者甚可畏也(불가외자심가외야)
아아! 촉산(蜀山)의 험함이/嘻噓哉(희허재)! 蜀山之險(촉산지험)
어찌 임금을 넘어뜨리고 나라를 엎을 수 있으리오/安得以僨君覆國也哉(안득이분군복국야재)
그 암험함의 근원을 찾아보면,/究厥巖之所自(구궐암지소자)
진실로 임금 한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亶不外乎一人(단부외호일인)
한 사람의 불량함으로 말미암아,/由一人之不良(유일인지불량)
여기서 위험이 가장 크게 따른다./危於是而甲仍(위어시이갑잉)
궁실(宮室)이 넓고 큼은/宮室廣大(궁실광대)
암험함의 기본(基本)이요,/巖之輿也(암지여야)
여알(女謁)이 성행함은/女謁盛行(여알성행)
암험의 계단이요,/巖之階也(암지계야)
세금을 기준 없이 거두어들임은/稅斂無藝(세렴무예)
암험함을 쌓음이요,/巖之積也(암지적야)
도에 넘치는 사치는,/奢侈無度(사치무도)
암험함을 일으켜 세움이요,/巖之立也(암지입야)
부극(掊克)이 자리를 차지함은/掊克在位(부극재위)
암험으로 치닫는 길이요,/巖之道也(암지도야)
형벌(刑罰)을 자행(恣行)함은/刑戮恣行(형륙자행)
암험함을 고착케 함이다./巖之固也(암지고야)
비록 그 암험함이 백성에게 있다지만,/縱厥巖之在民(종궐암지재민)
어찌 임금의 덕에서 말미암지 않겠는가/何莫由於君德(하막유어군덕)
물은 하해(河海)보다 더 큰 것이 없지만,/水莫險於河海(수막험어하해)
큰 바람이 아니면 고요하고,/非大風則妥帖(비대풍즉타첩)
암험함이 민심보다 더 위태로운 것이 없지만,/險莫危於民心(험막위어민심)
포악한 임금이 아니면 다 같은 동포이다./非暴君則同胞(비폭군즉동포)
동포를 원수로 생각하니,/以同胞爲敵讐(이동포위적수)
누가 그렇게 하도록 하였는가?/庸誰使而然乎(용수사이연호)
남산(南山)이 저렇듯 우뚝하지만,/南山節節(남산절절)
돌이 험하게 붙어 있고,/維石巖巖(유석암암)
태산이 저렇듯 험준하지만,/泰山巖巖(태산암암)
노(魯)나라 사람들이 우러러 본다./魯邦所瞻(노방소첨)
그 암험함은 마찬가지인데/其巖一也(기암일야)
안위(安危)는 다르도다./安危則異(안위즉이)
나로 말미암아 편안하기도 하고,/自我安之(자아안지)
나로 말미암아 위태롭기도 하니,/自我危爾(자아위이)
백성을 암험하다 말하지 말라!/莫曰民巖(막왈민암)
백성은 암험하지 않느니라./民不巖矣(민부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