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합천향토사연구회 김무만 회장과 회원 10 여명은 지난 11월 23일 하반기 사업계획의 일환으로 산청의 남명 조식선생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는 남명 선생이 61세 이던 1561년 당시 삼가현의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 산청군 시천면 덕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1572년 72세에 역책(易簀)하기까지의 유적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 산천재(山川齋)
남명 선생이 이곳 산청의 덕산으로 이거하여 처음으로 지은 것인데 성현들의 책을 읽고 제자를 가르치던 서재이다. 이 서재의 이름이 산천재(山川齋)인데 이것은 주역의 26번째 괘인 “대축괘”를 흔히 산천대축괘(山川大畜卦)라 불리는데 여기서 “산천(山川)”를 따 온 것이며 “학문과 덕행, 재물과 명성 등과 같이 무엇인가를 크게 쌓아 올리는 일을 의미한다” 는 뜻이다. 또한 대축괘의 단전(彖傳)에서는 “대축괘는 강건하고 독실하게 공부하여 그 빛이 덕을 날로 새롭게 한다” 고 설명하고 있다. 주련에 “덕산복거(德山卜居, 덕산동에 살 곳을 정하고)” 라는 한시 7언절구가 새겨져 있다.
春山底處無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산 어디든지 향기로운 풀 없으랴마는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천제 사는 곳과 가까운 천왕봉만 좋아라.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사) 맨손으로 돌아와 무얼 먹고 살겠냐고?
銀河十里喫有餘(은하십리끽유여) 은하수처럼 십리 흐르는 물 먹고도 남으리.
▲ 남명 선생 묘소
남명기념관 뒷산(산청군 시천면 사리 산 72)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묘소의 터는 선생이 생전에 직접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조선역사에서 민간인 신분의 묘소중 가장 좋은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묘의 비문은 선생과 한평생 절친 사이인 충북 보은의 대곡(大谷) 성운(成運)선생이 지었다. 선생의 묘소 바로 밑에는 부실인 은진송씨 묘소가 있다.
▲ 덕천서원(德川書院)
남명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76년 문인들이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2년 중건하였고, 1609년(광해1년) 조정에서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사액(賜額)을 받게 된 뒤 크게 확장하여 이언적의 옥산서원, 이퇴계의 도산서원과 함께 삼산서원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지금의 건물은 1923년에 복원된 것이다.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1927년부터 처음으로 남명 선생의 위패를 이곳 숭덕사에 모시면서 수우당 최영경의 위패도 함께 배향하였다” 고 한다. “그후 위패 봉안 문제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는데 40여년간 남명 선양사업에 350억원 정도의 사비를 헌납한 조옥환 회장이 처음과 같이 해야 한다” 는 뜻을 관철시켜 현재까지 남명과 수우당 두분의 위패만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이날 회원들은 따뜻한 겨울날씨의 아름다운 경치를 느끼며 오전 답사일정을 마치고 함양 대봉산 힐링밸리로 이동하여 대봉산(1228m) 정상까지 설치된 모노레일 탑승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답사일정을 마무리 했다.
한편, 사단법인 합천향토사연구회는 합천지역의 묻혀진 향토사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순수 민간단체로 관심있는 군민중에서 읍.면별 1-2명이 참여할 수 있다. 매년 상반기는 군내 유적지를 답사하고 하반기는 타지역의 유적지 답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