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뱀의 해가 저물고 붉은 말의 해가 다가 오는 싯점이다. 이 싯점에서 ‘타증불고(墮甑不顧)’ 즉 “깨진 시루(옹기)는 돌아보지 말라” 는 고사성어와 함께 미.중 핑퐁외교의 주역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남긴 공직자가 지녀야 할 운명적 책임감 등에 대한 소회를 나열해 본다.
그는 “공직자는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기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는 단순히 주어진 일에 순응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골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공동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그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 공직자의 숙명이라는 뜻이다.
2026년 병오년 새해를 맞이 하는 합천군 공무원들은 지난 것은 잊고 척연각오(惕然覺悟)의 자세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첫째. 공직은 선택하는 자리가 아닌 응답하는 자리이다
우리 합천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파고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과제만을 골라 수행할 여유가 없다. 때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여 농민의 시름을 달래야 하고, 때로는 초고령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를 촘촘히 메워야 한다. 남부내륙철도 시대를 대비한 역세권 개발이나 양수발전소 건립 같은 굵직한 현안들도 기다리고 있다. 이 과제들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군민이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이다. 이와 함께 지난 30여년 동안 제대로 거론조차 하지 않았던 기업유치 활동은 이제 생존을 위해 파부침주(破斧沈舟)의 자세로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진정한 공직의 가치는 내가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와 군민의 삶이 가장 절실한 곳에 먼저 다가가 빛을 비추는 데 있는 것이다.
둘째. 시대는 ‘준비된 헌신’을 요구한다
키신저의 말처럼 과제를 선택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과제가 주어지더라도 해결해 낼 수 있는 ‘역량’과 “도전” 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다져야 할 결심은 단순히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넘어선 '실천적 준비' 가 되어야 한다. 변화하는 행정 환경 속에서 과거의 관행에만 머물러 있다면, 예기치 못한 시대적 요구에 결코 응답할 수 없다. 합천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차대한 기회들은 예고 없이 찾아 온다. 그때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탓하는 것은 공직자의 도리가 아니다. 어떤 거센 파도가 밀려와도 합천이라는 배를 안전하게 항해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 합천의 미래를 용역업체 등에게 맡기는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스스로 연구하고 고민하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고 군민의 삶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공직자는 국민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우리가 마주한 과제가 어렵고 힘들수록,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이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고된 업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합천군의 내일을 바꾸고 군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짐을 짊어져야 한다. 헨리 키신저가 말한 ‘봉사의 시기’는 바로 ‘새해를 맞이한 오늘’이며, ‘기다리고 있는 과제’는 ‘군민의 안녕과 합천의 미래를 위한 재설계’이다.
합천군의 공무원은 합천의 오늘을 책임지고 내일을 준비하는 설계자들이다. 특히 각 읍.면 지역 출신 공무원들은 확고한 주인정신으로 자기 고향을 걱정해야 한다. 타지 출신 공무원들과는 달리 지역의 퇴직공무원, 이장협의회. 청년회 등이 힘을 합쳐 자기 고향에 100인 이상 규모의 기업을 유치해야만 그 지역 학교도 살고 합천의 생존이 보장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 밖에는 어떤 시책과 처방도 일시적 전시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마주한 과업들이 비록 무겁고 힘들지라도, 시대가 우리에게 맡긴 소명임을 누구보다 공무원들이 먼저 자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