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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군단위 농촌지역의 정치부패는 관료집단에서 비롯한다

 “나는 합천군을 지키는 방파제인가”

기사입력 2026-03-0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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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3지방선거의 군수, 군의원 예비후보 등록이 322일부터 시작된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군단위 지역은 대부분 대기업과 대학이 없고 또 법원, 검찰, (), 언론 등의 조직도 거의 없는 편이다.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다만 관료(공무원)와 선거를 통해 직위를 확보할 수 있는 농,축협조합장, 군의원, 도의원, 군수, 기타 몇몇 단체장 등이 지역의 '엘리트' 층이라 할 수 있다. '엘리트'는 높은 수준의 지위와 지식, ()를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는 단순한 지위의 높낮이로 결정되지 않는다. 월등한 전문성과 그에 걸맞은 엄격한 직업 윤리라는 두 개의 축으로 지탱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중 윤리라는 축이 무너진다면, 그 지역사회는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 지역에서는 몇차례 목격해 왔다.

 

공직에 오래 근무하여 “ 행정의 달인 등 전문성은 갖추었으되 공적 윤리가 결여된 엘리트는 사회의 자산이 아니라 '유능한 약탈자'에 불과하다.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공익이 아닌 사익을 극대화하거나 권력에 아첨하는 데 사용한다. 직업 윤리가 무너진 조직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실력 있는 인재 보다 '굴신(屈身)에 능한 자'들이 득세한다. 소신 있게 직언하는 전문가는 뒤로 밀려나고, 권력의 의중을 살피며 몸을 굽히는 이들이 요직을 차지할 때, 그 조직의 공적 기능은 마비되기 시작한다.

 

사회적 갈등이나 혼란이 발생할 때 우리는 흔히 정치와 정치인을 비난의 화살표로 삼는다. 물론 정치의 책임이 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자. 정치는 본질적으로 대중의 욕망과 표를 먹고 사는 생물이다. 때로는 포퓰리즘에 휘둘리고 때로는 광기 어린 증오에 매몰되기도 한다. 이 때 우리지역에서 계도, 점검, 교육 등으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군정(郡政)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관료(공무원) 집단이다.

 

우리 지역의 근간을 이루는 관료(공무원)와 농,축조합의 구성원들이 직업적 규범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면, 정치가 아무리 폭주하더라도 지역사회 전체가 궤도를 이탈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 지역에서 목도하는 부당공천 등 '저질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관료(공무원) 집단의 타락과 저질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관료가 영혼 없이 권력의 도구가 될 때 정치는 비로소 거리낌 없이 타락하고 부패한다. 방파제가 스스로 무너져 바닷길을 터주는데, 거센 파도가 마을을 덮치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6.3선거에 임하는 이 때 우리 지역사회의 엘리트층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합천군을 지키는 방파제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유능한 약탈자인가. 권력자에게 줄 잘 서는 아첨꾼인가. 공무원과 농,축조합 임직원 등이 이 질문에 답하며 직업적 규범과 윤리로 무장하여 후보자들을 대하고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지역의 정치는 품격을 되찾고 지역사회는 희망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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