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앞둔 지역 정가가 온통 ‘퍼주기 공약’으로 도배되고 있다. 후보들마다 기본소득이니 복지수당이니 하며 소모적이거나 응급처치 수준의 약속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합천군처럼 정작 인구 소멸의 벼랑 끝에 선 지역 경제를 어떻게 일으세울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뇌는 찾기 힘들다. 선거철만 되면 유행되느 포퓰리즘의 망령이 군수, 도의원, 군의원후보자 할 것이 지역의 미래를 잠식하고 있는 꼴이다.
지금 농촌 지역의 위기는 단순히 지갑이 비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떠나고 기업이 외면하면서 생산의 동력이 멈춰버린 것이 본질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적 토대 없이 중앙정부의 교부금 등으로 만으로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닷물을 마시는 격이다. 자생력 없는 복지는 결국 지역을 ‘정부 보조금 중독’ 상태로 몰아넣을 뿐이다.
중용(中庸)은 제20장에 정치의 아홉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래백공(來百工)’을 역설했다. “많은 기술자와 장인을 모여들게 하면 재용(財用)이 풍족해진다”는 가르침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바로 ‘기업 유치’다. 우수한 기업이 들어와야 인재가 모이고, 일자리가 생기며, 그 낙수효과로 지역 상권이 살아난다. 여기서 확보된 세수가 다시 복지의 재원이 되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성현들이 강조한 실학(實學)적 경제학이다. 이 가르침은 몇 천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경제원칙이다
무엇보다 개탄스러운 것은 후보들의 안일하고 굴종적인 태도이다. 발로 뛰며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을 설득해 ‘일터’를 만들 생각은 하지않고, 오로지 중앙정부의 교부금이나 보조금을 얼마나 더 따올 수 있느냐를 능력의 척도로 삼고 있다. 중앙의 처분만 바라보며 구걸하듯 예산을 구하는 것은 행정 보조역의 일이지, 지역의 명운을 짊어진 정치인의 태도가 아니다. 스스로 먹거리를 창출할 의지 없이 배급물에만 기대려는 자들은 공직의 무거운 뺏지를 달 자격이 없다.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는 것은 복지 수당 몇 푼이 적어서가 아니다. 내 삶을 걸고 꿈을 펼칠 ‘번듯한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기본소득이라는 달콤한 마취제에서 깨어나, 기업 유치라는 험난하지만 정직한 길을 제시해야 한다. ‘예산 노예’를 자처하며 무능을 감추는 이들에게 지역의 백년대계를 맡길 수는 없다.
유권자들 역시 냉철한 심판자가 되어야 한다. 당장 내 손에 쥐여주는 쌈짓돈보다, 내 자식과 손주들이 돌아와 뿌리 내릴 수 있는 ‘기업 지도’를 그려내는 후보가 누구인지 가려내야 한다. ‘기업유치’의 지혜를 외면한 지도자에게 미래는 없다. 이번 선거는 선심성 잔치가 아니라, 지역의 존망을 건 엄중한 선택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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